서울 지하철 건설사 · 1971년, 종로에서 시작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은 48.8km인가 54.2km인가
서울 지하철 2호선은 공식 자료에서도 48.8km와 54.2km로 다르게 보인다. 하나는 순환 본선이고 다른 하나는 성수지선을 포함한 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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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1971년, 종로에서 시작한 서울 지하철 (4)
누가 2호선에 원을 그렸나
2호선은 처음부터 순환선이 아니었다. 1975년 서울의 중심을 기존 도심·영등포·영동과 잠실로 나누려는 계획 속에서 원으로 바뀌었고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반론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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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1971년, 종로에서 시작한 서울 지하철 (3)
1974년 8월 15일, 축하하지 못한 최초 지하철
1974년 광복절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수도권 전철이 동시에 개통했다.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던 축하행사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으로 모두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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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1971년, 종로에서 시작한 서울 지하철 (2)
지하철을 지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반대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계획이 없어서 늦어진 사업이 아니었다. 약 300억 원에 이르는 건설비와 차량·전기설비를 어떻게 마련할지가 착공 뒤까지 사업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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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1971년, 종로에서 시작한 서울 지하철 (1)
전차가 멈춘 뒤, 서울은 땅을 팠다
서울은 전차를 없앤 뒤 곧바로 지하철을 얻지 못했다. 버스로 버틴 2년여 동안 교통난은 더 심해졌고, 1971년 도심 한복판을 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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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서부간선도로는 왜 다시 넓어지나 (4)
평면화는 멈췄지만 공사는 끝나지 않았다
서부간선도로 평면화는 보류됐지만 일반도로화 공사는 설계변경과 함께 계속된다. 두 해에 걸친 사고이월과 5차로 대안, 공사기간 541일 연장이 남긴 과제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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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서부간선도로는 왜 다시 넓어지나 (3)
서울시는 17번 들었다는데 주민들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서울시는 서부간선도로 일반도로화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17회 들었다고 밝혔다. 공개된 회의와 보도를 따라가면 고척교 입체교차, 구일고가 존치, G밸리 교통대책 요구가 여러 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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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서부간선도로는 왜 다시 넓어지나 (2)
줄어들 교통량을 믿었다, 계산 속 도로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서부간선도로 일반도로화는 지하도로와 주변 광역도로가 교통량을 나눠 가질 것이라는 전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2013년 계산에 반영된 도로 하나는 2025년 오목교 폐쇄 때도 개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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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서부간선도로는 왜 다시 넓어지나 (1)
오목교 지하차도를 막자 서부간선도로가 멈춰 섰다
서울시는 서부간선도로를 일반도로로 바꾸기 위해 오목교 지하차도 한 방향을 막았다. 통행속도가 절반 아래로 떨어지자 넉 달도 지나지 않아 지하차도를 복구하고 평면화 계획을 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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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26)
60년의 성과와 한계
신도시 60년은 국가가 산업화와 서울 집중, 주택난, 이주 갈등, 균형발전, 광역교통, 노후화를 도시공간으로 풀어보려 한 반복된 실험이었다. 성과도 실패도 같은 자리에서 되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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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25)
신도시는 어디에, 어느 행정구역에 있나
정조의 수원부터 3기까지 스물네 편을 왔다. 그런데 이 가운데 공식 세대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1기와 2기, 3기뿐이다. 나머지는 계획도시사의 일부이거나 선례로만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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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서울 병원에 가는 길은 넓어졌다, 안 가도 될 길은 생겼나
수서역에는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셔틀이 모인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23곳의 분포와 고속철도 증편, 지역 진료 연계를 대조해 장거리 통원의 다음 과제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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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신도시 60년 (24)
노후계획도시 정비, 신도시의 두 번째 생애
2027~2028년부터 1기 신도시에서 매년 2만 가구의 이주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는 성남시의 이주대책을 불완전하다고 판단했고, 일산과 중동은 선도지구 지정 뒤 1년 반 넘게 특별정비구역이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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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공공기관 이전, 이제는 지역과 연결할 차례 (4)
집적의 방향을 성과로, 2차 이전이 지켜야 할 원칙
기존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기관을 모으겠다는 2차 이전의 방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그 방향이 성과가 되려면 산업 연계와 정주 여건, 원도심 연결, 성과 공개가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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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공공기관 이전, 이제는 지역과 연결할 차례 (3)
기존 기반을 유치 경쟁력으로, 지자체의 준비를 비교하다
정부가 혁신도시 중심 집적을 원칙으로 내세우자 지자체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준비물을 꺼냈다. 나주·충북·강릉·제주·울산·전북의 대응을 확인된 범위에서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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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공공기관 이전, 이제는 지역과 연결할 차례 (2)
혁신도시가 남긴 성과와 숙제, 2차 이전의 출발점
1차 공공기관 이전은 지방세수의 흐름을 바꾸고 일부 혁신도시의 인구와 경제를 키웠다. 다만 성과는 지역마다 달랐고 혁신도시 밖 모도시와 원도심에는 다른 숙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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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공공기관 이전, 이제는 지역과 연결할 차례 (1)
1차가 만든 기반 위에, 2차 공공기관 이전의 방향을 읽다
정부가 9월 3일 내놓은 2차 공공기관 이전 방침은 새 거점이 아니라 기존 혁신도시 중심의 집적이다. 1차의 기능군 배치 경험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을 잇는지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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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신도시 60년 (23)
첫 입주는 언제인가 — 선교통 후입주의 시험
3기 신도시의 첫 입주는 2026년 12월 인천 계양이다. 그 뒤로 창릉·대장·왕숙·교산이 2029년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창릉과 대장, 왕숙은 첫 입주와 핵심 철도 개통 목표 사이에 3년 안팎의 간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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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신도시 60년 (22)
GTX가 열리자 드러난 것
운정중앙~서울역 구간의 평일 수요는 예측치의 120.5%까지 올랐다. 반면 서울역~수서 구간은 삼성역 지하 5층 기둥 80개 가운데 50개에서 주철근 2,570개가 빠진 것이 확인되며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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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21)
3기 신도시, 서울에 더 가깝게
1기는 서울에서 20킬로미터, 2기는 30킬로미터 밖이었다. 3기는 10킬로미터 안쪽이다. 여섯 지구 34.46제곱킬로미터에 19만 3천 호가 들어선다. 첫 입주는 올해 12월 인천 계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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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신도시 60년 (20)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지방으로 간 실험
혁신도시의 산학연 클러스터 용지는 전체의 6.6%다. 기업도시는 자족시설용지를 30% 이상, 거점확장형은 40% 이상 요구받는다. 두 도시 모두 이전 완료가 아니라 그다음이 평가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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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신도시 60년 (19)
세종, 행정기능을 옮긴다는 것
행복도시는 6개 생활권으로 나뉘고 각 생활권에 다른 기능이 배치됐다. 중앙행정과 상업·문화·국제교류, 지방행정, 산업·대학·연구, 의료·복지, 첨단지식기반. 청사 이전과 주택공급을 넘어선 설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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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환승의 숨은 비용 (9)
환승저항을 줄이려면 무엇부터 봐야 하나
환승 개선을 판단하려면 아홉 가지를 봐야 한다. 통로 길이부터 방향별 차이까지, 관측할 수 있는 항목으로 바꿔야 대안을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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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신도시 60년 (18)
김포한강·파주운정·검단·양주, 교통의 숙제
판교만 보면 2기는 성공이고 교통 논란만 보면 실패다. 김포한강과 파주운정, 검단, 양주는 광역교통과 생활권 성숙이 도시 평가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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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17)
판교·광교·고덕, 자족이 이미지가 된 사례
판교테크노밸리는 2023년 기준 1지구 1,277개 기업, 2지구 365개 기업이 들어섰다. 그런데 판교의 자족은 IT 고용이고 광교의 자족은 행정 기능이며 고덕의 자족은 산업과 국제화다. 같은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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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광주대단지, 도시가 되기까지 (3)
1971년 8월 10일, 여섯 시간
부슬비 속에 5만 명이 모였고 여섯 시간 만에 흩어졌다. 그날 이후 도로가 뚫리고 출장소가 생기고 2년 뒤 성남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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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광주대단지, 도시가 되기까지 (2)
평당 2,000원의 약속과 16만 원의 고지서
평당 2,000원에 3년 거치 5년 분납으로 약속된 땅에 평당 8,000원에서 1만 6,000원을 일시에 내라는 통지가 왔다. 못 내면 징역이라는 경고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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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광주대단지, 도시가 되기까지 (1)
서울은 왜 15만 명을 광주군으로 보냈나
1960년대 서울 인구는 10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시민 셋 중 하나가 무허가 주택에 살았고, 서울시는 이들을 경기도 광주군으로 옮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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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16)
위례, 세 지자체에 걸친 신도시
위례는 서울 송파구와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있다. 주민의 생활권은 하나로 움직이지만 행정서비스와 학교 배정, 교통 민원, 기반시설 책임은 셋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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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환승의 숨은 비용 (8)
평촌은 환승을 피하려고 설계된 도시였다
환승저항이라는 말이 쓰이기 전에도 계획가들은 환승을 피하려 했다. 1980년대 평촌 과천선 노선 비교표에 그 판단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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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15)
동탄1과 동탄2, 2기 안의 거대 생활권
동탄1은 9.0㎢에 4만 1,500호, 동탄2는 24.0㎢에 11만 6,500호다. 같은 동탄이지만 정책 시점도 규모도 도시의 중심도 다르다. 둘을 하나로 묶으면 어느 쪽도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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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14)
이름의 정치 — 화성에서 동탄, 송파에서 위례
한국토지공사는 화성신도시 대신 화성·동탄신도시를 강조했다. 이유는 분양이었다. 송파신도시는 위례가 됐고 김포양촌은 김포한강이 됐다. 이름이 바뀌는 순간 정책이 겨냥한 시장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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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13)
당시 기사로 본 2기의 형성
2기 신도시는 공식 안내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당시 기사를 보면 부동산 가격 급등과 난개발 논쟁, 강남 수요 대체, 투기 우려, 공영개발, 후분양, 교통 선투자 논쟁 속에서 만들어진 도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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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환승의 숨은 비용 (7)
트램과 BRT는 환승 부담을 줄이는가
트램이라서 편하고 버스라서 불편한 것이 아니다. 같은 높이에서 탈 수 있는지, 비와 차도로부터 분리되는지가 실제 부담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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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환승의 숨은 비용 (6)
버스가 끼면 환승은 달라진다
버스와 지하철 사이, 버스와 버스 사이의 환승은 거리로만 잴 수 없다. 신호 대기와 날씨, 정류장을 찾는 수고와 배차의 불확실성이 함께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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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12)
2기는 몇 개인가 — 10개와 12개 사이
국토교통부는 수도권 2기 신도시를 10개로, LH는 아산과 대전을 더해 12개로 센다. 어느 쪽이든 판교와 위례만 보면 규모가 왜곡된다. 동탄2 하나가 분당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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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11)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다섯 얼굴
분당은 강남 접근성으로, 일산은 서북부 축으로, 평촌·산본·중동은 기존 도시와의 밀착으로 읽어야 한다. 1기를 하나의 성적표로 평가하면 다섯 도시가 서로 다른 조건에 놓였다는 사실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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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환승의 숨은 비용 (5)
지하철끼리 갈아타기가 유독 힘든 역들
금정역에서는 내려서 맞은편 열차를 타면 된다. 신길역에서는 500m를 걷는다. 노선도에는 둘 다 똑같은 환승역으로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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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환승의 숨은 비용 (4)
교통카드는 환승의 무엇을 말해주지 않는가
수도권 교통카드 자료는 실제 통행을 보여주는 강력한 기록이다. 그런데 지하철 안에서 갈아탄 이동은 그 기록에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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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10)
200만 호는 왜 그렇게 급했나
1기 신도시는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이어진 과정이었다. 계획 주택공급 약 29만 2천 호. 언제 발표됐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지었고 기반시설이 어떻게 따라왔느냐가 이 세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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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9)
상계, 아파트와 천막이 같은 시기에 있었다
1985년 상계에 주공아파트 약 3만 가구 계획이 발표됐다. 그 자리에는 이미 서울에서 밀려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철거민들은 상계동에서 명동성당으로, 다시 부천 고강동으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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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환승의 숨은 비용 (3)
환승 10분이 20분이 되는 계산법
걷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갈아타는 부담을 하나의 단위로 바꿔 비교하는 방식이 있다. 일반화시간이라고 부르는 이 계산이 교통사업의 편익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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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8)
목동, 기록이 두꺼운 신시가지
목동 신시가지 개발 기록은 약 1만 권이 남아 있다. 결과만이 아니라 결정 과정을 따라갈 수 있는 드문 사례다. 같은 시기 철거민들은 100여 회의 시위와 농성 끝에 일부 권리를 뒤늦게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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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7)
왜 서울 안에 신도시를 지었나
1기 신도시를 분당과 일산에서 시작하면 신도시사는 외곽 개발사가 된다. 그 전에 서울은 이미 자기 안에서 대규모 택지개발과 공영개발을 시험하고 있었다. 목동과 상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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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6)
섬을 육지로 만들고 청사를 밖으로 옮겼다
1970년대 서울은 없던 땅을 만들어 도시를 넣었다. 여의도는 매립으로, 잠실은 한강 물길을 막아서. 같은 시기 과천에는 정부 청사가 옮겨 갔다. 땅을 만드는 방법과 기능을 옮기는 방법이 함께 시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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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환승의 숨은 비용 (2)
갈아탄다는 사실이 만드는 네 가지 부담
환승의 부담은 하나가 아니다. 걷는 거리와 기다리는 시간, 길을 찾는 수고와 혼잡·날씨까지 네 갈래로 나눠 보면 어느 역이 왜 힘든지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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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환승의 숨은 비용 (1)
35분 환승과 40분 직행, 우리는 왜 더 느린 길을 택할까
환승 횟수와 이동시간만으로는 경로 선택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걷기와 기다리기, 길 찾기와 연결 실패의 불안까지 더해야 이용자가 체감하는 시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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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5)
울산·창원·구미, 공장이 먼저 선 도시
1960~70년대 산업기지도시는 공장 옆에 주거지를 붙인 것이 아니었다. 항만과 공업용수, 도로, 배후 주거, 지역 행정체계가 함께 움직였고 도시의 모양은 산업정책이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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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4)
강남은 조용히 생긴 신도시가 아니다
영동 개발은 서울 남쪽에 아파트를 지은 일이 아니었다. 다리와 고속도로, 토지구획정리, 공공기관과 학교 이전, 버스노선이 한 덩어리로 움직여 서울의 중심을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긴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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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1963년, 서울 대확장 (4)
1963년에 서울이 된 곳은 지금 어디인가
1963년 서울에 편입된 5개 군 84개 리는 오늘날 강남·서초·송파·강동·노원·도봉·중랑·구로·금천·관악·강서·양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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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1963년, 서울 대확장 (3)
버스, 세금, 학교 — 편입 첫해에 벌어진 일
1963년 1월 편입이 시행된 뒤 몇 달간 신문에 실린 것은 상징이 아니었다. 버스 노선과 요금, 보건소, 농업 진흥책, 그리고 세금이 싸다 비싸다는 진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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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3)
신도시라 불렸지만 서로 달랐다
국토교통부와 LH 설명은 1960년대에 현대적 신도시가 처음 지어졌다며 울산과 여의도, 영동, 성남을 나란히 든다. 그런데 이 넷은 도시를 만든 이유도 주민이 겪은 일도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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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2)
정조의 수원은 신도시의 시작인가
국가유산청 해설은 수원 화성을 한국 최초의 계획 신도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군사와 행정, 상업을 한 도시에 묶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대한민국 신도시 정책의 출발점으로 옮기면 설명되지 않는 것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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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1963년, 서울 대확장 (2)
도민증이 시민증으로 바뀌던 무렵
1962년 11월 신문에 편입 예정지 주민들의 목소리가 실렸다. 기대와 불안이 나란히 있었고, 그 기준은 도시계획이 아니라 수도와 버스, 세금과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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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1963년, 서울 대확장 (1)
서울이 지금 크기가 된 날은 언제인가
서울 면적이 두 배 넘게 늘어난 1963년의 확장에는 날짜가 여러 개 있다. 구상이 알려진 날, 법이 공포된 날, 형식상 시행일, 그리고 주민이 체감한 날이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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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신도시 60년 (1)
신도시를 읽는 세 개의 시간층
신도시라는 말은 분당·일산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울산과 영동, 목동과 상계를 거쳐 3기까지, 이 말은 시기마다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려 나왔다. 그 층위를 구분해야 신도시사가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