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서울역과 청량리를 잇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도시 지하철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개통식은 축하행사가 되지 못했다.

종각역 1호선 승강장
종각역 1호선 승강장(2018년). 1974년 개통 당시 아홉 역 가운데 하나로, 계획 단계의 가칭은 화신앞이었다. 개통 당시 사진이 아니다. 사진: LERK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크기 조정

서울역사편찬원의 『현대 서울의 교통과 통신』에 따르면 개통식은 오전 11시 대통령 참석 아래 열릴 예정이었다. 바로 앞서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육영수 여사가 피격됐다. 국무총리가 대신 개통식을 주재했고 예정됐던 축하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서울 최초의 지하철이 문을 연 날과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같은 날짜에 겹쳤다. 1호선 개통은 대대적으로 선전될 국가 행사가 아니라, 제대로 축하하지 못한 채 시작된 일상이 됐다.

도심 지하철은 아홉 역이었다

개통 당시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7.8km였다. 역은 서울역·시청·종각·종로3가·종로5가·동대문·신설동·제기동·청량리 아홉 곳이었다.

현재 이 구간에는 동묘앞역이 있어 열 개 역으로 보인다. 동묘앞역은 처음부터 있었던 역이 아니다. 개통 당시의 1호선을 현재 역 목록으로 세면 최초 역 수를 하나 늘려 쓰게 된다.

서울기록원에는 종각역의 가칭이 ‘화신앞’이었던 계획도 남아 있다. 종로의 화신백화점 이름을 빌린 역명이 검토됐지만 실제 개통 때에는 보신각에서 이름을 딴 종각역이 됐다. 지금 익숙한 노선도도 처음부터 그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열차는 아홉 역에서 멈추지 않았다

첫 지하철의 규모를 7.8km와 아홉 역만으로 설명하면 개통의 절반을 놓친다.

같은 날 수도권 전철도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역에서 수원까지 경부선 41.5km, 구로에서 인천까지 경인선 27km, 용산에서 청량리를 거쳐 성북까지 경원선 18.2km가 전철화됐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서울 지하철을 합친 전철망을 94.5km로 정리한다.

서울시가 지은 도심 지하철과 철도청이 전철화한 기존 철도는 개통 첫날부터 직결됐다. 서울 최초의 지하철은 서울 안에서만 달리는 한 줄로 출발하지 않았다. 인천과 수원, 서울 북부를 한꺼번에 묶은 수도권 철도로 출발했다.

해외 대도시에서 도심 지하철이 먼저 생기고 교외철도와의 연결이 뒤따른 사례와 다른 출발이었다. 서울의 시가지는 이미 외곽으로 커졌고 인천과 수원 방면의 통근 수요도 존재했다. 늦게 지은 대신 기존 철도를 활용해 처음부터 넓은 통근권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전기를 넘어서 달렸다

직결에는 기술적인 대가가 따랐다. 서울 지하철은 직류 1,500V, 철도청 전철은 교류 25,000V를 사용했다. 한 열차가 두 구간을 계속 달리려면 전력방식이 바뀌는 경계에서 전기를 차단하고 다시 받아야 했다.

서울역과 지상 철도 사이, 청량리와 회기 방면 사이의 절연구간은 운영기관과 전력방식이 다른 철도를 하나의 노선처럼 이어 붙인 흔적이다. 승객에게는 같은 1호선이지만 그 아래에는 서로 다른 시설과 운영체계가 맞물려 있었다.

서울기록원은 개통 전 시범운전이 4천 회에 이르렀다고 기록한다. 국내에 처음 도입하는 전동차와 신호체계, 직결운전을 동시에 시험해야 했다.

개통식보다 먼저 일상이 됐다

『현대 서울의 교통과 통신』은 1면을 장식할 예정이던 개통 기사가 피격 사건으로 7면 구석에 실렸다고 서술한다. 첫 지하철은 시작부터 역사적 사건의 그늘에 가렸다.

그러나 열차는 운행을 시작했다. 시민은 서울역과 청량리 사이를 지하로 오갔고 같은 열차를 타고 인천과 수원, 성북 방면까지 이동했다. 행사는 취소됐지만 철도는 그날부터 도시의 일상이 됐다.

1호선이 도심과 수도권을 동서로 이은 뒤 서울은 다음 노선을 다시 그렸다. 처음 계획의 2호선은 지금처럼 원을 이루지 않았다. 순환선은 1975년 도시의 중심을 셋으로 나누려는 계획 속에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