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기록원은 서울 전차 운행이 1968년 12월 1일 0시에 끝났다고 기록한다. 1899년 처음 달린 뒤 약 70년 만이었다. 그러나 전차가 멈춘 자리에 지하철이 곧바로 들어온 것은 아니다.

1971년 4월 12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열린 지하철 1호선 착공식
지하철 1호선 착공식(1971년 4월 12일, 서울 중구 명동). 전차가 멈춘 지 2년 4개월 만이었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지하철 1호선 착공식」(H-TRNS-54436-742) / 공공누리 제1유형 / 크기 조정

서울 지하철 1호선 착공식은 1971년 4월 12일 열렸다. 그사이 2년 4개월 동안 서울은 전차가 나르던 승객을 버스로 받아내야 했다. 도로 위 철길을 걷어내면 교통이 풀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자동차만으로는 이미 커진 도시를 감당할 수 없었다.

서울 지하철의 출발점은 전차를 없앤 날이 아니라, 전차를 없애고도 교통난이 풀리지 않았던 시간에 있다.

시민의 발이 도로의 방해물로 바뀌었다

전차는 한때 서울 대중교통의 중심이었다. 청량리와 왕십리, 영등포와 서대문을 오가며 도심과 가까운 지역을 이었다. 버스보다 요금도 쌌다.

문제는 서울의 크기가 달라졌다는 데 있었다. 행정구역은 외곽으로 넓어졌고 주택지는 전차 선로 밖에서 자랐다. 정해진 궤도만 달리는 전차는 새로 생긴 동네까지 따라갈 수 없었다. 버스와 합승택시는 노선을 바꾸고 늘릴 수 있었지만 전차는 선로부터 놓아야 했다.

시설도 낡았다. 서울역사편찬원이 펴낸 『현대 서울의 교통과 통신』은 1960년대 초 전차의 92%가 이미 수명을 넘겼고 궤도의 34%도 노후했다고 설명한다. 속도는 시속 20km에 미치지 못했다. 도로 가운데를 달리던 전차는 버스와 택시가 늘수록 교통 흐름을 막는 존재로 지목됐다.

그래도 이용객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1966년 서울시 집계에서 전차는 하루 52만여 명을 날랐다. 버스 다음으로 많았다. 낡고 느렸지만 없애기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철길부터 걷고 버스를 넣었다

서울시는 1966년 교통난 완화대책을 단기·중기·장기로 나눴다. 당장은 버스를 늘리고 도로와 지하도를 건설하기로 했다. 중기에는 전차를 철거하고 장기에는 지하철을 놓겠다는 순서였다.

전차 선로는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았다. 세종로와 태평로에서 지하도 공사를 벌일 때마다 일부 구간이 먼저 끊겼다. 서울시는 한때 도심 선로를 외곽으로 옮기겠다는 계획도 내놨지만 실제 정책은 전차를 버스로 대체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운행이 끝날 무렵 서울시는 전차 노선을 따라 시영버스를 투입했다. 『현대 서울의 교통과 통신』에 따르면 1968년 11월 30일 20대, 12월 1일 31대가 증차됐다. 하루 30만~50만 명을 실어 나르던 전차를 대신하기에는 부족했다. 서울시는 이듬해 좌석버스를 입석으로 바꿔 한 대에 더 많은 승객을 태웠다.

전차를 없애 얻은 도로 공간보다 사라진 수송력이 컸다. 철길 철거가 곧 교통난 해소는 아니었다.

커진 서울에는 다른 규모의 교통수단이 필요했다

당시 서울의 교통 문제는 차가 막히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집은 외곽으로 퍼졌고 일자리와 학교는 도심에 몰렸다. 아침마다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도로의 방향과 수요도 맞지 않았다. 『현대 서울의 교통과 통신』은 당시 도심의 동서 교통량이 남북보다 2.5배 많았지만 도로 용량은 반대였다고 기록한다. 버스를 더 넣으면 수송력은 늘었지만 같은 도로를 쓰는 차량도 함께 늘었다. 노면 교통수단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때 지하철은 전차의 단순한 후계자가 아니었다. 도로와 선로를 분리해 도심을 통과한 열차를 경인선·경부선·경원선과 이어 서울 밖까지 보내는 계획이었다. 서울역과 청량리를 지하로 잇는 1호선이 첫 구간으로 정해진 이유도 두 역에서 기존 철도와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1년 도심을 열어젖혔다

1970년 양택식 시장이 취임한 뒤 지하철 계획은 실행 단계로 들어갔다. 철도청장을 지낸 양 시장은 서울역과 청량리 사이를 건설하고 이를 수도권 전철과 직결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1971년 4월 12일 시청 앞 착공식에는 대통령과 서울시장, 시민과 학생 등 약 3만 명이 참석했다. 공사는 땅을 파낸 뒤 구조물을 만들고 다시 덮는 개착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금처럼 터널 굴착기로 깊은 지하를 지나는 노선이 아니라 종로와 도심 도로를 길게 열어젖히는 공사였다.

전차가 멈춘 뒤 지하철 공사가 시작되기까지 2년 넘게 걸렸다. 1호선 개통까지는 다시 3년 4개월이 필요했다. 서울은 그동안 버스와 택시가 뒤엉킨 도로에서 버텨야 했다.

서울이 전차를 버리고 곧바로 지하철 도시가 된 것은 아니다. 먼저 철길을 걷어냈고, 그 빈자리를 자동차로 채워 봤으며,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다시 철도를 놓았다. 다만 두 번째 철도는 도로 위가 아니라 그 아래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