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라고 하면 아파트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1960~70년대에 국가가 새로 지은 도시 가운데 상당수는 주택이 목적이 아니었다. 공장이 먼저 있었고 도시는 그 공장을 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3기 신도시 계획기준 연구는 이 시기 한국 신도시 정책을 경제개발계획과 공업화정책에 따른 산업단지 배후도시 건설에서 출발한 것으로 정리한다. 그러면서 울산과 구미, 창원, 여천, 포항, 성남, 여의도, 영동, 반월, 잠실, 과천을 같은 시기의 전개 과정 안에 놓는다.
같은 시기라는 이유로 같은 유형은 아니다. 이 편에서는 그중 산업기지 쪽만 본다.
울산에서 시작됐다
울산신시가지는 1962년 현대적 의미의 신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한 사례로 정리된다. 같은 해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는 경제개발계획의 핵심 구상을 울산에서 실현하려 한 공업화의 전진기지로 설명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울산이 아파트 신도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산업입지와 노동력, 항만, 정유·화학, 조선·자동차 산업, 배후 주거와 도시기반이 한꺼번에 묶였다.
울산을 목록에 넣어야 신도시사가 수도권 주택정책으로만 좁아지지 않는다. 신도시를 서울 주변의 아파트 단지로만 이해하면 이 계보가 통째로 사라진다.
창원은 더 노골적이다
창원은 산업기지형 계획도시의 성격이 가장 뚜렷하다.
KDI 경제정책 시계열서비스에 실린 「창원기계공업기지 건설계획」은 이 기지를 "국제수준의 기계공업 기지화"라는 목표 아래 경남 마산시 웅남동 일원에 조성해, 소재와 요소부품, 기계류 수출의 전진기지로 삼으려 했다고 정리한다.
주목할 것은 이 문서가 담은 범위다. 토지이용과 사업규모, 기지 조성, 자금지원, 시행계획까지 들어 있다. 공장 계획과 도시 계획이 한 문서 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창원은 공장 옆에 주거지를 붙인 사례가 아니다. 산업정책이 도시형태를 직접 생산한 사례다.
목적이 주택이 아니었다
구미와 여천, 포항, 반월도 같은 계열이다.
이 도시들은 서울의 주택난을 덜려고 만든 외곽 주거도시가 아니다. 특정 산업의 입지와 생산체계를 만들기 위해 도시기반을 동원한 경우다. 주택은 중요했지만 목적 자체는 아니었다.
무엇이 함께 움직였는지를 보면 성격이 드러난다. 공장과 도로, 항만, 공업용수, 배후 주거, 노동력 재생산, 지역 행정체계. 이 일곱이 한 묶음이었다.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말이 낯설게 들릴 수 있다.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그 지역에서 살고 아이를 키우고 다음 세대가 다시 그 공장으로 갈 수 있어야 산업기지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학교와 병원, 상가가 계획에 들어간 이유다.
지금의 어느 계보로 이어지는가
이 방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뒷날의 기업도시와 산업클러스터형 신도시를 이해하려면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특정 산업을 유치하겠다며 부지를 잡고 도로와 용수를 넣고 배후 주거를 계획하는 문법은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산업의 종류와, 국가가 아니라 민간이 시행 주체로 들어올 수 있게 된 제도다.
2기 신도시의 동탄과 고덕이 산업과 주거를 함께 놓은 것도, 3기 신도시가 자족용지를 크게 잡겠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다른 답이다. 일자리가 없는 도시는 잠만 자는 곳이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초기 문법이 여기서 보인다
이 시기 도시들을 나란히 놓으면 각각 다른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산업기지도시는 생산기능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에서 출발했다. 여의도와 잠실, 영동은 서울의 팽창을 어떤 공간구조로 흡수할 것인가에서 출발했다. 성남은 서울의 빈곤과 철거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폭력적으로 드러냈다. 과천은 행정기능을 어디까지 분산할 수 있는가를 제도화했다.
그렇다면 1989년의 1기 신도시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 가운데 주택공급과 수도권 외곽 분산을 가장 강하게 제도화한 단계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여러 갈래 중 하나를 골라 밀어붙인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네 번째 질문을 본다. 정부 청사를 서울 밖으로 옮겨 만든 도시, 과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