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월 1일 서울에 들어온 땅은 경기도 5개 군에 걸쳐 있었고 넓이는 약 328㎢였다. 그 지역들이 지금 어디인지 맞춰 보면 서울의 절반가량이 나온다.

어디가 들어왔나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1966년판 「최신서울특별시전도」 설명문이 가장 압축된 목록을 담고 있다.

양주군에서는 구리면 6개 동과 노해면 9개 동이 들어왔다. 광주군에서는 구천면과 언주면이 통째로 넘어왔고 중대면 10개 동, 대왕면 5개 동이 따라왔다. 김포군에서는 양동면 8개 동과 양서면 6개 동, 시흥군에서는 신동면 8개 동과 동면 5개 동, 부천군에서는 소사읍 7개 동과 오정면 2개 동이 편입됐다.

합계는 5개 군 84개 리, 약 328.15㎢다.

다만 당시 신문에는 84개 리와 89개 리라는 두 수치가 함께 나온다. 법률·행정 정리 시점과 기사 작성 시점이 달랐거나, 리와 동을 세는 방식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서울역사박물관과 공식 연표가 지지하는 84개 리를 기준으로 삼는다.

한강 건너에서 바라본 서초구 스카이라인. 해질 무렵 고층 건물이 늘어서 있다
한강에서 바라본 서초구(2023년 12월). 이 일대는 1963년까지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이었다. 사진: SpaceshipMe / Wikimedia Commons / CC0

어느 구청이 맡았나

편입 직후 실무적으로 가장 급한 문제는 "어느 서울 구청이 어디를 맡느냐" 였다.

1962년 11월 26일 경향신문 「서울 편입지에 구청 출장소」에 따르면 서울시는 4개 구청 아래 11개 출장소 체계로 관리하려 했다. 당시 서울에는 구가 몇 개 없었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넓은 땅을 기존 구청이 출장소를 두어 나눠 맡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어디인가

1962년 11월 26일 경향신문 보도와 각 자치구 연혁을 대조하면 옛 지명이 지금 어디인지 따라갈 수 있다.

양주군 구리면 일부는 동대문구청 상봉출장소가 맡았고 지금의 중랑구 상봉·중화·묵·신내·망우동이다. 노해면은 성북구청 노해출장소 관할이었는데 지금은 도봉구 창동·방학·쌍문·도봉동과 노원구 월계·공릉·하계·중계·상계동으로 갈라졌다.

광주군은 성동구청이 네 개 출장소로 나눠 맡았다. 구천면은 구천출장소 관할로 지금의 강동구 천호·성내·암사·고덕·길동·명일·상일·둔촌동이다. 언주면은 언주출장소가 맡았고 지금의 강남구 논현·신사·압구정·청담·삼성·역삼·대치·개포동과 서초구 일부가 그 자리다. 중대면은 중대출장소 관할로 송파구 송파·석촌·삼전·가락·방이·오금·문정·장지·거여·마천동이 됐고 대왕면 일부는 대왕출장소가 맡아 강남구 수서·자곡·율현·세곡·일원동이 됐다.

시흥군·김포군·부천군은 영등포구청 소관이었다. 신동면은 신동출장소 관할로 지금의 서초구 서초·방배·반포·잠원동이다. 동면 일부는 시흥출장소가 맡아 구로구 가리봉동과 금천구 가산·시흥·독산동, 관악구 신림·봉천동으로 흩어졌다. 김포군 양동면은 양동출장소 관할로 강서구 가양·마곡·등촌·염창·화곡동과 양천구 신정·목동이 됐고 양서면은 양서출장소가 맡아 강서구 내발산·외발산·방화·개화·송정·과해동이 됐다. 부천군 소사읍과 오정면 일부는 오류출장소 관할로 구로구 항동·온수·궁·천왕·오류·개봉·고척동과 강서구 오곡·오쇠동이 됐다.

옛 리·동과 현재 동의 경계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대체로 일치하는 범위로 옮겼다.

여기서 읽히는 것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강남과 서초는 서로 다른 군에서 왔다. 강남구 대부분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이었고 서초구 상당 부분은 시흥군 신동면이었다. 지금은 한 덩어리처럼 묶여 이야기되지만 행정적 출신이 다르다.

둘째, 관악·금천·구로가 한 뿌리다. 시흥군 동면이 셋으로 갈라졌다. 신림동과 봉천동, 시흥동과 독산동, 가리봉동이 원래 같은 면이었다.

셋째, 강서구는 두 면에서 왔다. 김포군 양동면과 양서면이다. 앞 편에서 본 "개화산이 절반만 서울에 들어가 학교가 둘로 쪼개진다"는 불만이 나온 곳이 양서면 개화리 일대다.

넷째, 노원과 도봉은 양주군 노해면 하나였다. 노해라는 이름 자체가 노원과 해등을 합친 말이고 지금의 노원구 이름도 여기서 왔다.

서울의 절반을 다시 짠 일

정리하면 1963년의 편입은 단순한 경계 확장이 아니었다.

오늘날 강남·서초·송파·강동·구로·금천·관악·강서·양천·노원·도봉·중랑 일대의 행정적 기원을 한 번에 다시 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땅들은 편입 당시에는 농업 진흥책이 필요한 곳이었다.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그 뒤로 수십 년이 더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