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신도시가 내건 말 가운데 가장 자주 쓰인 것이 자족기능이다. 그런데 판교와 광교, 고덕에서 이 말은 각각 다른 것을 가리킨다. 용지 비율만으로는 잴 수 없다는 뜻이다.
판교는 숫자로 증명됐다
판교는 2기에서 자족기능이 도시 이미지로 가장 강하게 굳은 사례다.
시작은 난개발 방지와 계획개발이라는 명분이었다. 2004년 기사는 판교를 높은 녹지율과 신분당선, 벤처단지와 교육·연구기관 구상을 함께 갖춘 도시로 소개한다.
이후 판교테크노밸리라는 일자리 축이 생기면서 이 도시는 2기의 자족성이라는 단어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 사례가 됐다.
숫자가 남아 있다. 성남시사 50년사는 2023년 기준 판교테크노밸리 1지구 1,277개 기업, 2지구 365개 기업을 제시한다. 매출은 별도로 2021년 한 해 120조 원대를 제시한다.
자족성이 계획 문구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산업 지표로 확인되는 예외적 사례다.
판교만 보면 2기를 잘못 읽는다
다만 판교의 성공을 2기 전체의 성과로 옮기면 안 된다.
판교는 행정적으로 성남시 안에 있고 생활권으로는 분당과 강하게 이어지며 광역적으로는 강남과 연결된다. 판교의 성공은 판교의 계획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강남 접근성과 분당의 기존 생활기반, 신분당선, 판교테크노밸리, 그리고 그 시기 IT 산업의 성장 흐름이 함께 작동했다. 그러니까 판교는 자족형 신도시의 성공 사례이면서 동시에 입지와 시대적 산업 흐름이 맞아떨어진 사례다.
성남시사는 판교를 옛 낙생·판교 생활권과 경부고속도로, 신분당선·경강선 같은 교통축, 분당 생활권, 지식산업 집적이 한꺼번에 겹친 곳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문화유산 조사와 기존 마을의 해체·재편도 함께 벌어졌다고 적는다. 성공한 IT 신도시로만 정리하면 개발 이전 장소의 층위가 빠진다.
광교의 자족은 행정이었다
광교는 수원과 용인의 접경에 만들어진 남부권 신도시다.
판교가 민간 IT와 벤처 이미지가 강하다면 광교는 경기도청 이전과 광역행정 기능이 결합된 점이 다르다. 경기도청과 법조·행정 기능, 호수공원과 상업업무 기능이 함께 들어가면서 광교는 주거지이면서 행정·업무 복합도시가 됐다.
이 점에서 광교는 2기 신도시이면서도 행정기능 분산형 계획도시의 성격을 일부 갖는다. 앞서 본 과천의 계보와 닿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광교를 판교와 같은 잣대로 "일자리 성공사례"인지만 따지면 행정기능과 남부권 중심성이 분석에서 빠진다.
고덕은 신도시와 목적도시의 경계에 있다
평택 고덕은 성격이 또 다르다.
2008년 기사들은 고덕을 미군기지 이전과 황해경제자유구역, 글로벌교육문화타운, 자족형 신도시, 첨단산업단지와 연결해 보도했다. 국토교통부 공식 자료도 고덕 국제화계획지구가 평택항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시대의 대중국 전진기지, 수도권 남부 거점, 국제업무단지와 행정타운, 첨단지식연구단지와 물류·유통 중심지를 지향한다고 설명한다.
평택항과 미군기지 이전, 국제화계획지구, 첨단산업단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가 겹치면서 고덕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경기남부 산업·국제화 거점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고덕은 2기 신도시 목록에 있으면서도 행복도시나 혁신도시, 기업도시와 함께 목적도시의 관점에서 비교할 수 있다. 주택공급형과 목적도시형의 경계에 서 있다.
자족은 하나의 뜻이 아니다
셋을 묶으면 결론이 나온다.
판교의 자족성은 IT와 벤처 고용이다. 광교의 자족성은 행정과 업무 기능이다. 고덕의 자족성은 산업과 국제화, 그리고 군사기지 이전의 여파와 연결된다.
세 도시 모두 계획서에는 자족기능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실제로 들어온 것은 서로 다른 종류의 기능이었다.
그러므로 자족성은 용지 비율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 몇 퍼센트를 자족용지로 잡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기능이 실제로 들어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같은 비율의 땅에 물류창고가 들어오는 것과 연구소가 들어오는 것은 도시에 전혀 다른 결과를 남긴다.
다음 편에서는 이 세 도시와 반대편에 있는 곳들을 본다. 자족기능보다 교통이 먼저 숙제가 된 외곽 거점형 도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