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가 성공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 다섯 도시가 서로 다른 조건에 놓였기 때문이다. 물어야 할 것은 어떤 지표에서 성공했고 어떤 지표에서 한계가 남았는가다.
면적부터 두 배 넘게 차이 난다. 분당이 19,639천㎡, 일산이 15,736천㎡인데 평촌은 5,106천㎡, 산본은 4,203천㎡, 중동은 5,456천㎡다.
계획 주택공급은 분당 97.6천 호, 일산 69.0천 호, 평촌과 산본이 각 42.0천 호, 중동이 41.4천 호. 첫 입주는 분당이 1991년 9월로 가장 빨랐고 일산 1992년 8월, 평촌 1992년 3월, 산본 1992년 4월, 중동 1993년 2월 순이다.
큰 도시와 밀착형 도시
이 차이는 성격의 차이로 이어진다.
분당과 일산은 규모가 크고 독자적 생활권을 형성할 잠재력이 컸다. 도시 하나가 통째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평촌과 산본, 중동은 기존 도시와 더 밀착돼 있었고 면적도 작았다. 평촌은 안양, 산본은 군포, 중동은 부천의 기존 시가지와 붙어 있다.
이 차이가 뒷날의 평가를 가른다. 큰 신도시는 자족성과 중심성의 가능성이 크지만 통근과 광역교통의 부담도 커진다. 기존 도시 밀착형은 생활권 통합이 빠르지만 독자적 도시 이미지나 일자리 중심성은 약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도시마다 읽는 초점이 다르다
분당은 1기 최대 규모이면서 강남 접근성이 핵심이다. 분당선과 신분당선의 개통, 판교테크노밸리의 고용, 그리고 지금의 재건축 선도지구가 이 도시를 설명하는 축이다.
일산은 서북부 대형 신도시다. 문화와 국제, 평화라는 이미지가 붙었고 일산선과 자유로, 그리고 지금은 GTX-A가 서울 서북권 접근을 좌우한다.
평촌은 안양권의 신중심 업무지역을 겸했다. 과천선 전철의 비용분담과 초기입주 시점의 기반시설 동시 조성이 이 도시의 쟁점이다.
산본은 군포 기존 시가지와 연결된 중형 주거지다. 안산선과 산본역 생활권, 그리고 지금의 노후 아파트 정비가 초점이다.
중동은 부천의 도시구조를 바꾼 사례다. 경인축 위에 놓였고 7호선 연장과 경인고속도로, 부천 원도심과의 관계가 이 도시를 설명한다.
분당은 성남을 둘로 나눴다
분당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1기 신도시의 대표 사례이면서 동시에 성남 내부를 재편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성남시사 50년사는 분당을 19.639㎢에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조성된 약 39만 명 규모의 1기 신도시로 정리한다. 그러면서 개발 전 주민과 기존 지명, 문화유산, 그리고 입주 뒤 학교와 병원, 공원, 상업시설의 축적을 함께 다룬다.
숫자가 그 변화를 보여준다. 성남 인구는 1990년 54만 명대에서 1999년 92만 명대로 커졌다. 그리고 1999년 시점에 수정·중원 53만여 명과 분당 39만여 명이 한 도시 안에 병존했다.
그러니까 분당은 서울 주택난 해소를 위한 외곽 신도시인 동시에, 기존 성남을 원도심과 신도시로 갈라놓은 사건이다. 앞서 본 광주대단지의 자리가 수정구와 중원구다. 그 옆에 전혀 다른 도시가 생긴 것이다.
평촌에서 보이는 시행의 실제
평촌 기록은 1기 신도시의 압축 개발이 만든 긴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과천선 전철부터 그렇다. 금정–사당 15.7km 노선은 지상·지하 혼합안과 평촌 구간 지하화안, 안양시가 요구한 남북 지하노선안 사이에서 논쟁됐고 최종적으로 동서노선과 전 구간 지하화가 채택됐다. 총사업비는 3,991억 원으로 늘었고 한국토지공사가 그중 1,857억 원을 부담했다. 여기에 주변외곽도로 11.9km와 2,235억 원이 더해진다.
평촌은 철도 접근성이 있는 신도시라기보다 개발이익과 광역교통망 투자분담이 한데 묶인 신도시였다.
토지 취득 과정도 남아 있다. 사유지 3,245필지 4,634천㎡ 가운데 협의취득이 70.5%, 수용재결이 29.5%였다. 지장물 4,753동에는 주거용 가옥 3,063동과 상가 158동, 공장 69개, 교회 43개가 포함됐다. 가옥주 이주대책 적격자가 2,417명, 세입자 이주대책 적격자가 504명이었다. 1995년 12월까지 민원 909건과 민사소송 15건, 행정소송 30건이 확인된다.
보상과 이주는 주변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 속도와 형평성, 개발이익 배분을 결정한 핵심 조건이었다.
입주와 기반시설이 어긋났다
1기의 한계를 "교통 부족"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안 보인다.
평촌은 분당이나 일산처럼 단계별 입주를 나누지 않고 1992년 3월부터 전 공구에 분산 입주가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택지조성공사가 끝나기 전에 진입도로와 상수도, 하수도, 토량 확보가 동시에 압박을 받았다.
부족한 흙은 과천선 전철공사에서 나온 잔토와 산본 등 주변 공사 잔토로 채우려 했는데 지하철 공정이 지연되면서 계획한 양이 제때 들어오지 않았다. 우수관과 오수관이 잘못 연결된 곳은 안양시와 합동점검을 하고 CCTV로 촬영해 보수했다.
분당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9월 시범단지 입주에 맞춰 주변도로 4개 노선과 단지 내 진입도로 총 17km를 서둘러야 했다. 초기 하수는 성남시 하수종말처리장 1계열 5만 5천 톤/일을 1991년 8월 31일에 조기 준공해 처리했다. 입주 한 달 전이다.
1기 신도시의 한계는 입주 시점과 기반시설 완성 시점이 어긋나는 도시 운영의 문제였다. 계획이 나빴다기보다 속도가 모든 것을 압박했다.
다음 편부터 2기 신도시로 넘어간다. 1기의 이런 문제들을 알고 출발한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