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월 1일 편입이 시행됐다. 그 뒤 몇 달간 신문에 실린 편입지구 기사의 제목들을 늘어놓으면 무엇이 실제 문제였는지가 드러난다.
「합승 6개 노선 연장」, 「편입지구 버스 연장 운행」, 「버스 요금 내정」, 「편입지구 22개교에 건강관리시설 확장」, 「보건소 신설토록」, 「편입지구 농업 진흥책을 강화」, 「비싸다고 진정」, 「버스 노선 연장·세금 싸게」.
상징에 관한 기사는 없다.
가장 먼저 터진 것은 교통
1963년 2월 6일 경향신문과 2월 7일 조선일보가 새 편입지구로 합승 노선 6개가 연장된다고 보도한다. 3월 6일 동아일보에는 「편입지구 버스 연장 운행」, 3월 9일 조선일보에는 「버스 요금 내정 새 편입구 5개 노선」이 실린다.
서울이 됐으니 서울 버스가 들어와야 했다. 그런데 이건 노선을 늘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디까지 갈지, 요금을 얼마로 할지가 함께 정해져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갈등이 시작된다.
4월 2일 동아일보 「편입지구 버스·합승 요금에 물론」, 4월 3일 조선일보 「비싸다고 진정」. 노선이 들어온 것은 반가운데 요금이 비싸다는 것이다.
4월 12일 조선일보 「외곽 도는 시내버스」는 다른 불만을 보여준다. 노선이 들어오긴 하는데 중심을 지나지 않고 외곽으로만 돈다는 것이다.
공공 서비스는 약속으로 받아들여졌다
2월 27일 동아일보는 편입지구 22개 학교에 건강관리시설을 확충한다고 전한다.
3월 12일 조선일보에는 「보건소 신설토록」이 실린다. 주민 요구 또는 집단 건의 형태로 보건소를 새로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주민들은 서울 편입을 상징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가 확대된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앞 편에서 본 "수도와 전기가 들어올 테고 좋다"는 기대의 연장선이다.
그런데 그곳은 아직 농촌이었다
2월 19일 경향신문에 「편입지구 농업 진흥책을 강화」가 실린다.
지금 강남과 송파, 노원이 된 지역이 1963년에는 농업 진흥책이 필요한 곳이었다. 편입지구 상당 부분이 여전히 농촌이었다는 뜻이다.
앞 편에서 주민들이 "농토를 어떻게 해야 하나"를 걱정한 이유가 여기 있다. 서울이 되면 농지 관련 행정과 규제가 달라지는데 그들에게는 그게 생계였다.
요구는 묶여서 나왔다
5월 28일 경향신문 기사 제목이 이 시기를 압축한다.
버스 노선 연장·세금 싸게
노선을 늘려 달라는 요구와 세금을 낮춰 달라는 요구가 한 제목에 붙어 있다. 여기에 건축 허가와 생활 규제에 대한 불만이 얹혀 있었다.
편입지구 주민의 요구는 개별 민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집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네 개의 축
1963년 동아일보·경향신문·조선일보 기사를 훑으면 편입 직후 몇 달은 네 갈래로 모인다. 시민증과 호적, 출장소를 둘러싼 행정 전환이 하나다. 버스와 합승 노선, 요금, 도로를 둘러싼 교통 재편이 둘이다. 학교와 보건소, 경찰지서 같은 공공 서비스가 셋이고 세금과 건축 허가, 농지를 둘러싼 규제와 부담이 넷이다.
여기서 읽히는 것이 있다. 1963년 서울 대확장은 "서울이 넓어졌다"는 선언보다 "이제 서울식 행정과 비용 구조가 들어온다"는 경험으로 더 강하게 체감됐다.
혜택과 부담이 함께 왔다. 버스가 들어오는 대신 요금을 내야 했고, 보건소가 생기는 대신 세금이 붙었고, 도시 규제가 적용되는 대신 농지를 어떻게 할지 정해야 했다.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
이 패턴은 낯설지 않다.
신도시가 들어서거나 행정구역이 조정될 때마다 비슷한 순서가 반복된다. 먼저 기반시설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땅값이 움직이고, 실제로 들어오는 서비스와 부담이 함께 오고, 노선과 요금과 규제를 둘러싼 요구가 집단으로 정리된다.
1963년의 기사 제목들이 지금 읽어도 익숙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