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1월 15일 동아일보 3면에 실린 기사의 부제는 이랬다. "수도·전기가 들어올 테고 좋다 / 시내 버스 들어올 테고 / 한 학교가 둘로 나눠지고 싫다 / 행정사무도 번거롭고"
제목은 「시민증으로 바뀌는 24개 리의 도민증」이었다. 경기도민이 서울시민이 되기 직전, 그 지역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한 줄에 압축돼 있다.
기대와 불안이 나란히 있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
같은 날 같은 지면에 실린 다른 기사는 「우리나라 지도가 바뀐다」였다. 최고회의 상임위원회가 전날인 14일 행정구역 변경 관련 7개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듬해 1월 1일부터 서울이 확장된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정부 논리를 비교적 자세히 옮긴다. 서울의 과밀, 주택·위생·공안상의 난관, 도시권 확충, 한강 중심 재정비, 주민 편의와 지리적 조건.
그런데 같은 기사가 곧바로 회의적 관측을 덧붙인다. 민정 이양을 앞둔 선거구 개편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지역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행정구역을 바꾸는 이유가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주민 반응은 세 갈래였다
「시민증으로 바뀌는 24개 리의 도민증」에 담긴 목소리는 크게 세 부류로 갈린다.
첫째, 기대. 전기와 수도가 들어올 것이다. 시내버스가 들어올 것이다. 교통망이 좋아질 것이다. 서울과의 판로 관계가 넓어질 것이다.
당시 이 지역들은 서울 바로 옆이면서도 상수도와 전기가 닿지 않는 곳이 많았다. 편입은 곧 기반시설이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둘째, 부담과 불안. 잡부금 부담이 생길 것이다. 건축 허가 규제가 까다로워질 것이다. 농토를 어떻게 해야 하나. 호적초본 한 장 떼려고 구청까지 다녀야 한다.
서울이 되면 세금 체계와 규제가 달라진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에게는 농지가 어떻게 될지가 걸렸다.
셋째, 경계 그 자체에 대한 혼란.
이게 가장 구체적이다. 개화산 일대가 절반만 서울로 들어가게 되면서 학교 하나가 둘로 쪼개지는 문제가 생겼다. 현지에서는 이런 반응이 나왔다.
"이건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다."
땅값은 즉시 반응했다
기대와 불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튿날인 11월 16일 경향신문에는 「땅값 2배 정도 뛰어」라는 기사가 실린다. 편입 예정지의 땅값이 곧바로 오른 것이다.
편입은 생활 편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자산 가치의 문제로도 즉시 읽혔다. 이 반응은 이후 서울 외곽에서 반복해서 나타나게 되는 패턴의 이른 사례다.
행정은 서둘러 준비했다
11월 17일 경향신문은 「시민증 연내 교부」를 보도한다. 새로 편입되는 지역 주민에게 시민증을 그해 안에 내주고 출장소와 생활 편의를 정비하겠다는 내용이다.
11월 20일에는 「서울 편입지구에 9개 구청 출장소 설치」가 실린다. 서울시가 영등포·성북·성동·동대문 관하에 출장소를 두고 마을 이장들을 공무원으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기사의 초점이 정체성이나 상징이 아니라 행정 수습에 있다는 점이다. 서울이 되는 것의 의미를 논하는 대신, 누가 어느 출장소에서 어떤 서류를 처리할지가 먼저 다뤄진다.
도시계획이 아니라 생활 문제였다
이 자료들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공식 담화가 나오기 전부터 편입 예정지 주민들은 이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고 추상적인 도시계획이 아니라 수도, 교통, 세금, 학교, 호적, 건축 허가 같은 생활 문제로 체감하고 있었다.
11월 중순의 편입 예정지는 기대와 불안, 자산 기대, 행정 전환이 한꺼번에 겹친 상태였다.
다음 편에서는 실제로 편입이 이루어진 뒤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 지역들이 오늘날 어디가 됐는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