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1기 신도시 다섯 곳이다. 국토교통부와 LH 자료는 이 도시들을 1980년대 후반 주택난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응해 서울 근교에 조성한 대규모 신도시로 설명한다. 계획 주택공급은 약 29만 2천 호였다.

앞 편들에서 본 도시들은 목적이 저마다 달랐다. 산업기지는 공장을 돌리려고, 여의도와 잠실은 서울의 팽창을 받아 내려고, 과천은 청사를 옮기려고 지어졌다.

1기는 다르다. 주택 자체가 목적이었다.

도시디자인이 아니라 공급 정책이었다

1기를 이해하려면 「주택 200만 호 건설」이라는 정책 배경을 전제로 깔아야 한다.

1기 신도시는 도시디자인 실험이기 이전에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가격 상승과 주택 부족에 대한 대량 공급 정책이었다. 이 순서를 뒤집으면 이 세대가 왜 그렇게 급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1기 신도시 연구보고서는 1기를 하나의 출범일이 아니라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이어진 조성과 입주, 준공의 과정으로 정리한다. 그래서 이 세대에는 "언제 발표됐나"보다 "얼마나 빨리 공급됐고 어떤 기반시설이 뒤따랐나"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일산 서구와 한강. 격자로 구획된 신도시 블록이 주변 농지와 뚜렷이 구분된다
상공에서 본 일산 일대(2011년). 격자로 구획된 신도시가 주변과 뚜렷이 갈린다. 29만 호를 짓는다는 말은 이런 땅을 다섯 곳에 만든다는 뜻이었다. 사진: Brücke-Osteuropa / Wikimedia Commons / CC0

분당은 주택단지가 아니었다

「분당신도시 개발사」의 수치를 보면 이 사업의 성격이 드러난다.

분당은 서울 도심 남동쪽 25km, 강남 남쪽 10km에 있는 19,639천㎡ 규모의 신도시다. 사업기간은 1989년 8월 30일부터 1996년 12월 31일까지, 수용인구 39만 명, 주택공급 9만 7천 세대, 총사업비 4조 2천억 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총사업비의 구성이다. 4조 2천억 원 안에 분당선 전철과 분당–수서 도시고속화도로 등 광역교통망 확충비 1조 6천억 원이 들어 있다. 사업비의 40% 가까이가 교통이었다.

그래서 분당은 주택단지라기보다 서울 동남권과 성남, 수원, 용인을 잇는 광역 교통·상업·주거 거점으로 계획된 사례로 읽어야 한다.

기반시설 계획의 목록도 그 규모를 보여준다. 주변도로망 51.3km, 전철 32.2km, 공원 94개소, 유치원 11개소, 초등학교 27개소, 중학교 16개소, 고등학교 15개소, 공용청사 66개소. 분당–선릉 전철 25.1km는 분당–수서 18.5km와 수서–선릉 6.6km로 나뉘었고 분당–수서 구간은 한국토지공사가 사업비를 전액 부담하는 구조였다.

평촌을 보면 공급 호수의 한계가 보인다

평촌은 규모가 작지만 다른 것을 보여준다.

「평촌신도시 개발사」는 확정 면적 5,105,904.4㎡, 계획인구 168,188명, 계획세대 42,047호로 정리한다. 그리고 토지이용을 이렇게 나눈다. 주택건설용지 37.8%, 상업용지 3.6%, 공공시설용지 58.6%.

주택을 짓는 땅보다 도로와 공원, 학교, 하천, 공공청사, 공급처리시설이 들어가는 땅이 더 넓었다. 공급 호수만 세면 이 절반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

계획인구 17만 명이라는 숫자도 단순 계산이 아니다. 안양시안 12만 명과 중앙정부안 25만 6천 명 사이에서 과천·목동·상계·중계의 밀도와 용적률을 비교한 뒤, 상업·공공시설·공원녹지와 광역 기반시설 부담을 고려해 조정된 값이다. 수도권정비계획상의 과밀 억제 논리까지 반영된 결과다.

성과는 숫자로 확인된다

1·2기 신도시 종합평가 연구 정리본은 1기 공급량을 28.4만 호로 정리한다. 그리고 인구 목표 달성률 106%, 주택 목표 달성률 113%를 제시한다. 그러면서 1기 입주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 안정화 효과가 비교적 뚜렷했다고 요약한다.

단기간에 대량의 주택을 공급했고 서울의 주택난과 가격 압력을 일정하게 덜었으며 수도권의 주거 선택지를 크게 넓혔다. 이것이 1기의 성과다.

그런데 더 큰 스케일에서는 반대였다

같은 평가자료가 함께 지적하는 것이 있다. 신도시가 서울 인구분산에 기여하면서도 수도권 전체의 집중은 키웠다는 양면성이다.

수도권 인구비율은 1980년 35.5%, 1990년 42.8%, 2000년 46.3%, 2010년 49.1%로 올랐고 2019년에는 50%를 넘어섰다.

1기 신도시는 서울 과밀을 완화했지만 수도권 집중은 강화했다. 이 양면성을 빼면 1기 평가는 칭찬이나 비판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

성공했기 때문에 다시 계획해야 한다

한계는 초기부터 구조적이었다.

업무기능과 고용기능이 주거 공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베드타운 논란이 이어졌다. 광역교통은 입주 시점의 체감 수요를 채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원주민 보상과 이주 갈등은 충분히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30년이 지나면서 아파트 노후화와 기반시설 용량, 주차, 상하수도, 학교 재배치, 이주대책 문제가 다시 전면에 나왔다.

여기서 표현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1기 신도시는 실패했기 때문에 정비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으로 도시가 됐기 때문에 다시 계획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은 이 전환을 제도화한 것이다.

신도시는 한 번 만들면 끝나는 도시가 아니라 30년 뒤 다시 계획해야 하는 도시다. 이것이 1기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일지 모른다.

다음 편에서는 다섯 도시를 하나씩 본다. 같은 세대지만 같은 도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