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역에서는 병원으로 갈아탈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수서고속철도역에서 병원 본관과 암병원을 잇는 셔틀을 평일 8분 간격으로 운행한다고 안내한다. 서울아산병원은 수서역 3번 출구와 병원을 평일 20~30분 간격으로 연결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도 같은 출구 옆에서 셔틀을 태운다. 철도가 지역과 서울을 잇고 병원 버스가 역에서 진료실까지 남은 길을 이어준다.
이 길이 9월 들어 더 넓어졌다. 국토교통부는 8월 31일 KTX·SRT를 9월 1일부터 KTX로 통합 운행하고 수서축 좌석 공급을 약 30% 늘린다고 발표했다. 앞선 8월 3일 정부 설명에는 증편의 기대효과로 ‘지방 주민의 서울 대형병원 등 의료 서비스 접근 확대’가 명시됐다. 서울 병원에 가기 쉬워지는 것은 철도정책이 내세운 편익이기도 하다.
같은 정부는 지역에서 치료를 마칠 수 있도록 병원 사이의 진료 연계도 지원하고 있다. 필요한 서울 진료를 편하게 받는 일과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될 진료를 지역에서 받는 일은 모순이 아니다. 문제는 전자를 위한 좌석이 늘어나는 동안 후자를 위한 다음 진료도 함께 마련되고 있느냐다.
전국 47곳 중 수도권 23곳, 빅5는 모두 서울
흔히 말하는 ‘3차 병원’의 분포를 보려면 먼저 상급종합병원 지정명단을 펼쳐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중증질환의 고난도 진료를 맡도록 지정하는 종합병원이다. 대학병원은 대학과의 관계를 가리키는 이름이지 그 자체로 같은 지정 등급은 아니다.
2024~2026년 제5기 상급종합병원은 전국 47곳이다. 복지부 지정명단을 소재지별로 나누면 서울 14곳, 경기 6곳, 인천 3곳이다. 수도권 23곳이 전체의 48.9%를 차지한다. 나머지 24곳은 비수도권에 있다. 병원마다 규모와 전문인력이 달라 기관 수의 비율이 곧 치료 역량의 비율은 아니다.
비수도권 병원도 고르게 흩어져 있지는 않다. 지정명단의 경북권에 속한 다섯 병원은 모두 대구에 있다. 전남권에는 광주의 전남대병원·조선대병원과 전남 화순의 화순전남대병원이 함께 묶인다. 명단의 진료권역은 행정구역과 다르다. 같은 진료권역이라도 거점 병원에 가려면 시·도 경계를 넘어야 할 수 있다.
이른바 빅5로 범위를 좁히면 다섯 곳 모두 서울에 있다. 서울대병원은 종로구, 세브란스병원은 서대문구에 있다. 한강 남쪽에는 강남구의 삼성서울병원, 송파구의 서울아산병원, 서초구의 서울성모병원이 자리 잡았다. 빅5는 법정 등급이 아니라 이들 대형병원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이 때문에 병원행 철도 지도를 수서역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빅5에 속하는 세브란스병원은 신촌의 병원으로, 수서역 셔틀을 운영하는 강남세브란스병원과 별도 기관이다. 신촌 세브란스는 서울역과 용산역을 잇는 셔틀도 안내한다. 서울의 여러 철도역이 서로 다른 병원의 환승 거점으로 쓰이는 셈이다.
열차가 빨라져도 재방문은 남는다
서울 대형병원을 찾는 비수도권 진료인원은 적지 않다. 장종태 의원실이 지난해 공개한 보건복지부 자료 재구성 표에 따르면 빅5의 비수도권 연간 진료인원은 2022년 71만 2,848명에서 2024년 79만 7,103명으로 늘었다. 2년간 11.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진료인원 증가율은 4.7%였다.
이 집계가 수서행 열차의 환자 수를 뜻하지는 않는다. 공개 표에는 병원 간 중복 환자 처리방식이 충분히 설명돼 있지 않고 교통수단이나 왕복 횟수도 나오지 않는다. 2024년까지의 의료이용 증가가 이번 철도 증편의 결과일 수도 없다. 셔틀 운행은 병원행 교통편이 갖춰져 있다는 근거이지 열차가 환자로 가득 찼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렇다고 병원 셔틀을 단순한 부대시설로 볼 일도 아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가 낯선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다시 갈아타야 한다면 철도에서 줄인 시간만으로 이동의 편의를 설명하기 어렵다. 역과 병원을 잇는 버스는 이 환승 부담을 덜어준다. 서울아산병원이 당일 예약환자와 보호자에게 진료예약증이나 예약 문자를 확인하고 셔틀을 태우는 것도 이 교통편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보여준다.
다만 셔틀을 타도 집에서 출발해 진료를 받고 돌아오는 여정은 남는다. 재진을 위해 다시 방문하면 교통비와 시간이 또 들고 보호자가 동행할 때는 두 사람의 일정이 함께 움직인다. 필요한 고난도 치료를 받으러 서울에 가는 것과 그 뒤의 진료까지 계속 서울에서 받는 것은 구분할 문제다. 고속철도가 줄일 수 있는 것은 한 번 이동하는 부담이다. 이동 횟수를 줄이려면 진료를 이어받을 병원이 있어야 한다.
돌아가는 기차표와 지역의 다음 진료는 다르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10월 시작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은 병원 사이의 역할을 나누려는 정책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희귀질환에 집중하고 다른 진료는 협력병원과 분담하도록 지원한다. 여기서 회송은 귀가 교통편이 아니라 환자의 진료를 다른 의료기관으로 연결하는 절차를 뜻한다.
연계 실적은 늘었다. 복지부가 2025년 4월 9일 공개한 사업 초기 집계에서 전문회송은 2024년 11월 4,565건에서 2025년 1월 1만 8,923건으로 증가했다. 지역 병원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신속히 진료를 연결하는 체계도 41개 상급종합병원이 구축했다고 밝혔다. 지역 병원에 보내는 것뿐 아니라 필요할 때 다시 상급종합병원으로 연결하는 장치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전국 사업의 회송 실적이다. 서울 병원에서 비수도권 거주지로 돌아간 사람만 센 것이 아니며 장거리 재방문이 얼마나 줄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진료 연계가 늘었다는 변화가 곧 서울 통원이 줄었다는 결과는 아니다.
올해는 평가 기준도 진료의 연결에 무게를 뒀다. 복지부가 1월 29일 발표한 성과지원 방안에는 외래 재진진료량에 따른 지원 가감산과 의뢰·회송의 질 평가가 들어갔다. 환자를 받은 병원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때 제공하는지 살피고 진료정보 교류에 관한 환자의 경험도 평가한다는 내용이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덜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정책의 성공을 가릴 수 없다. 다른 병원에서 필요한 치료를 이어받았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지역 진료를 권유받아도 상태가 나빠졌을 때 상급종합병원에 다시 연결될 수 없다면 환자가 장거리 통원을 포기하기 어렵다.
제주에서는 의료진이 건너가는 길도 열렸다
병원을 지정하는 지리적 기준도 바뀐다. 복지부는 2026년 4월 상급종합병원의 소요병상수를 산정하는 진료권역을 종전 11개에서 14개로 개편했다. 제주를 별도 권역으로 두고 인천권을 구분했으며 충남권은 북부와 남부로 나눴다. 2027~2029년 제6기 지정을 앞두고 지역별 병상 수요를 따지는 틀을 고친 것이다. 권역을 나눴다고 그곳에 상급종합병원이 새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제주는 제5기 지정명단에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서울 병원의 전문성을 나누는 시도가 시작됐다. 연세의료원과 한라의료재단은 올해 3월 6일 세브란스–제주한라 공동진료센터를 열었다. 연세의료원은 3월 23일자 소식지에서 의료진이 정기적으로 제주를 방문해 진료하고 두 기관이 검사 결과를 공유하며 치료 방향을 정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서울 진료를 막는 구조는 아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진료 예약과 전원 절차를 신속히 지원한다. 제주에서 이어갈 진료와 서울에서 받아야 할 진료를 나누되 둘 사이의 연결은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센터 개소만으로 상경 횟수가 줄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의료진의 방문과 진료정보 공유를 운영방식에 넣었다.
수서역 병원 셔틀은 필요한 교통편이다. 줄여야 할 것은 그 편의가 아니라 피할 수 있는 장거리 재방문이다. 철도 증편의 성과는 더 많은 좌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의료 연계의 성과는 서울 진료를 마친 환자가 다음 예약을 어디에 잡았는지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