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기록원이 정리한 지하철 1호선 건설 기록에는 당시 경제부총리의 반대가 한 문장으로 남아 있다.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서울의 교통난이 심각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적었지만 지하철을 놓을 돈이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서울시는 1971년 4월 12일 1호선 공사를 시작했다. 서울역과 청량리를 잇는 도심 구간의 예상 사업비는 330억 원이었다. 서울역사편찬원의 『현대 서울의 교통과 통신』은 이 구간과 접속할 수도권 전철에도 289억 원이 계상됐다고 기록한다.
당시 국가와 서울시가 감당하기에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토목공사를 시작한다고 해서 전동차와 전력·신호설비까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 최초의 지하철은 노선을 어디에 놓느냐 못지않게, 누가 어떤 돈으로 건설하느냐를 먼저 풀어야 했던 사업이었다.
첫 삽을 뜬 뒤에도 돈은 마련되지 않았다
1호선은 종로를 따라 땅을 파는 개착공법으로 지었다. 도로 위에서 땅을 열고 구조물을 만든 뒤 다시 덮는 방식이다. 서울역사편찬원은 토목공사를 15개 공구로 나눴고 국내 업체로도 시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차량과 신호·통신, 전기설비는 사정이 달랐다. 국내에 도시 지하철을 건설하고 운영한 경험이 없었다. 기존 국가철도와 직결하려면 서울 지하철의 전력방식과 철도청 구간의 전력방식이 달라도 한 열차가 오갈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건설비 문제도 착공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울기록원에 따르면 정부와 서울시는 공채 발행과 일본 차관 도입을 추진했고 1972년 4월 차관 협정을 체결했다. 공사를 시작한 지 약 1년이 지난 뒤였다.
1호선은 재원이 모두 확보된 뒤 착공한 사업이 아니었다. 먼저 공사를 시작하고 공사와 함께 외부 자금과 국내 조달 방식을 맞춰 간 사업에 가까웠다.
한 노선이 아니라 두 사업을 묶었다
재원 논쟁을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의 지하철 공사로만 보면 규모를 잘못 읽게 된다.
정부와 서울시는 서울 지하철 건설과 수도권 기존 철도의 전철화를 함께 추진했다. 서울시는 도심 지하 구간을 짓고 철도청은 경부선과 경인선, 경원선 일부를 전철화했다. 두 사업의 열차는 서울역과 청량리에서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했다.
서울역사편찬원이 인용한 1971년 9월 실시계획서에도 기존 철도를 전철화해 지하철 1호선과 연결한다는 구상이 담겼다. 서울 안의 짧은 지하철을 만드는 동시에 인천과 수원, 성북을 잇는 수도권 전철망을 만든 것이다.
이 구조는 비용을 키웠지만 1호선의 효용도 키웠다.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7.8km만 오가는 노선이었다면 개통 첫날부터 수도권의 통근축이 되기는 어려웠다.
반대는 틀렸고 추진은 옳았다고만 할 수 없다
결과만 놓고 보면 지하철 건설은 필요했다. 서울 인구는 급증했고 도로 위 교통수단만으로 도심 통행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1호선은 이후 서울 지하철망의 출발점이 됐다.
그렇다고 당시의 재정 우려를 시대착오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사업비와 외화 조달, 기술 의존,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책임 분담은 실제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판단과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판단은 처음부터 같은 말이 아니었다.
서울은 공채와 차관, 국내 토목기술과 국외 설비기술을 묶어 둘 사이의 간격을 넘었다. 1974년 8월 15일, 그렇게 지은 첫 지하철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개통을 축하하기로 했던 날은 서울 지하철사에서 가장 무거운 하루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