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은 처음부터 원이 아니었다. 서울기록원이 공개한 초기 계획에서 2호선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노선이었다. 지금의 순환선은 1975년에 등장했다.
흔히 알려진 이야기는 단순하다. 구자춘 서울시장이 지도에 원을 그었고 2호선이 순환선이 됐다는 것이다. 시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은 맞지만 한 사람이 지도에 선을 긋자 노선이 결정됐다는 설명으로는 당시의 도시계획과 반론이 사라진다.
서울역사편찬원의 『서울 도시교통의 건설과 경관의 변화』는 서울시 문서와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을 바탕으로 결정 과정을 복원한다. 그 기록에는 시장뿐 아니라 3핵 도시구상, 지하철본부의 계획안, 도시계획위원들의 논쟁이 함께 등장한다.
지하철보다 도시의 중심을 먼저 정했다
1975년 3월 4일 구자춘 시장은 대통령 연두순시에서 서울을 세 개의 중심으로 나누는 구상을 보고했다. 기존 도심 하나에 기능이 몰린 구조에서 벗어나 영등포와 영동·잠실을 새로운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었다.
순환선은 세 중심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었다. 서울 지하철본부가 같은 해 6월 제출한 시설결정 자료는 기존 도심과 영등포, 영동·잠실을 연결해 강남의 두 부도심 개발을 촉진한다고 목적을 밝혔다.
2호선의 원은 교통수요만 따라 그린 선이 아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두 부도심을 키우기 위해 그린 도시계획선이었다. 지하철이 사람이 많은 곳을 뒤따르는 대신 앞으로 사람과 시설을 옮길 곳을 먼저 이으려 했다.
도시계획위원들은 남북선이 먼저라고 맞섰다
순환선에 반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1975년 7월 3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서울의 남과 북을 잇는 노선이 순환선보다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미 사람이 모여 사는 지역의 교통난을 먼저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강남을 위해 큰 원을 먼저 놓는 것이 타당한지도 쟁점이었다.
논쟁은 노선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수요를 먼저 처리할 것인가, 지하철로 미래 도시구조를 만들 것인가의 충돌이었다. 서울시는 후자를 택했다.
이 선택 때문에 3호선과 4호선 같은 남북축은 순환선 뒤에 건설됐다. 순환선이 강남 개발과 세 중심 연결을 앞당긴 대신, 다른 지역의 지하철 접근은 더 기다려야 했다.
원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2호선은 1978년 3월 9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착공했다. 먼저 지은 곳은 군자차량기지와 성수, 잠실, 강남을 잇는 구간이었다. 1980년 신설동에서 종합운동장까지 첫 구간이 열렸고 이후 강남과 을지로, 신촌과 영등포 구간이 차례로 이어졌다.
1984년 5월 순환선이 모두 연결되기까지 6년 2개월이 걸렸다. 공사 중에는 고가로 계획했던 여러 구간이 지하로 바뀌었고 왕십리 환승을 위해 노선도 조정됐다. 지도에 그린 원은 공사와 민원, 환승계획을 거치며 실제 도시 안에 맞춰졌다.
2호선의 순환선 결정은 구자춘 시장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시장 한 사람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원을 그린 것은 한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그 원을 서울의 구조로 만든 것은 계획과 반론, 공사와 단계개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