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기록원은 1983년 12월 9일 강서구 목동 현장에서 목동 신시가지 개발사업 기공식이 열렸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이 사업과 관련된 기록 약 1만 권이 발견됐다고 소개한다.
신도시 연구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은 결과가 아니라 어떻게 결정됐는가의 기록이다. 아파트 단지는 남지만 그 단지가 왜 그 모양이 됐는지를 보여주는 문서는 대개 남지 않는다.
목동은 예외다. 그래서 이 도시는 사례로서 값이 다르다.
결정 과정을 따라갈 수 있다
기록이 두껍다는 것은 무엇을 볼 수 있다는 뜻인가.
공영개발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됐는지, 택지를 어떻게 조성하고 어떤 조건으로 분양했는지, 학교와 상가와 도로와 열병합시설을 언제 어떤 순서로 넣었는지, 이주와 보상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행정이 어떤 문서로 남겼는지까지 따라갈 수 있다.
계획 변경도 볼 수 있다. 처음 안과 최종안이 어떻게 달라졌고 그 사이에 어떤 협의가 있었는지가 문서에 남는다. 도시가 완성된 모습만 보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서울 안에 있으면서 계획도시였다
목동의 성격은 공영개발형 신시가지다.
서울 안에 있으면서도 기존 도심처럼 자연스럽게 자라지 않았다. 계획된 가로망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 학교, 상업시설, 공원, 기반시설이 한꺼번에 들어갔다. 이 방식은 뒷날 1기 신도시의 기본 문법과 통한다.
다만 목동은 서울 외곽의 독립 신도시가 아니다. 서울 내부의 새 생활권이다. 그래서 서울의 교육과 교통, 주택시장에 아주 밀접하게 맞물린다. 오늘날 목동이라는 말이 주거지 이름을 넘어 교육 브랜드로 통하는 것도 이 위치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에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목동을 공영개발의 성공 사례로만 읽으면 절반이 빠진다.
1980년대 목동·신정동 신시가지 개발 과정에도 철거와 이주 문제가 있었다. 목동본당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목동지역 철거대책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다섯 가지를 요구했다. 먼저 입주하고 나중에 철거할 것, 세입자에게도 아파트 입주권을 줄 것, 원가로 분양할 것, 철거 건물을 현시가로 보상할 것, 저렴하거나 장기분할 상환이 가능한 아파트를 지을 것.
1984년 10월 목1동 철거가 시작될 때 서울시 방침은 달랐다. 무허가 가옥주에게 철거이주 보조금과 아파트 입주권을 주되, 장기분할 임대아파트는 짓지 않고 세입자 보상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추진위원회의 핵심 요구는 그 시점에 관철되지 않았다.
1984년에서 멈추면 안 된다
여기서 이야기를 끊으면 이후에 벌어진 일이 사라진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 컬렉션은 1984년 8월 양화교 점거농성부터 1985년 3월 목동사거리 싸움까지 목동 주민들이 100여 회의 시위와 농성을 벌였다고 정리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이렇게 적는다. 가옥주는 무허가주택의 재산권을 인정받았다. 세입자는 10평 아파트 입주권과 저리 이주비 융자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므로 목동 철거민 대책은 이렇게 읽는 것이 정확하다. 처음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고 선입주 후철거와 장기분할 임대아파트도 실현되지 않았다. 다만 투쟁 이후 가옥주 권리와 세입자 일부 입주권·이주비가 뒤늦게 제도화됐다.
성공도 실패도 아니다. 시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사례다.
어떤 기억은 남고 어떤 기억은 희미해진다
목동의 공동체 기억에도 이 이중성이 있다.
오늘의 목동은 교육과 주거 브랜드가 강한 계획 신시가지로 기억된다. 그 이미지가 강해질수록 기존 뚝방촌과 철거민 투쟁의 경험은 지역의 일상 기억에서 뒤로 밀린다.
반대 방향의 기억도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목동 투쟁을 1980년대 빈민운동의 서막이자 이후 철거민 투쟁의 모범으로 기념한다. 이동철의 『목동 아줌마』를 다룬 연구는 목동 철거 경험이 하층민 서사와 르포문학 속에서 다시 읽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니 목동의 연구 가치는 계획 문서의 두께만이 아니다. 성공한 주거지의 이미지가 어떤 기억을 보존하고 어떤 기억을 희미하게 만드는지까지 포함한다.
두 갈래로 읽어야 한다
목동을 제대로 보려면 접근이 두 갈래여야 한다.
하나는 행정이 남긴 공영개발 기록을 따라가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개발로 밀려난 주민의 요구와 보상 논리를 따라가는 일이다.
목동은 잘 계획된 신시가지다. 동시에 누가 그 계획 안에 들어오고 누가 밖으로 밀려났는가를 물어야 하는 사례다. 둘은 모순이 아니라 같은 도시의 두 장부다.
다음 편은 상계다. 목동과 성격이 반대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