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와 LH 계열의 3기 신도시 공식 설명은 신도시의 역사를 1950년대 전후복구부터 정리한다. 그리고 1960년대에 공업화와 경제개발정책이 본격화되면서 현대적 의미의 신도시가 처음 건설됐다며 울산신시가지와 여의도, 영동, 성남을 든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1기 신도시가 1989년에 나왔다고 해서 신도시적 개발이 그때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산업도시가 있었고 서울 안의 신시가지가 있었고 이주정착지와 행정기능 분산 도시가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넷을 한 칸에 넣으면 무엇이 사라지는가.

같은 목록에 있지만 같은 도시가 아니다

울산은 산업화의 도시다. 공장을 어디에 놓을지, 그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어떻게 수용할지가 문제였다.

여의도는 한강 개발이었다. 제방을 쌓고 물길을 정리해 땅을 만든 뒤 업무지구와 아파트를 올렸다.

영동은 성격이 또 다르다. 토지구획정리로 땅을 나누고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를 놓자 땅값이 도시보다 먼저 움직였다. 학교와 공공기관이 옮겨 오면서 사람의 이동이 뒤따랐다.

성남은 앞의 셋과 결이 완전히 다르다. 서울의 무허가 주거지를 정리하면서 사람을 실어 낸 곳이다. 광주대단지가 만들어졌고 1971년 그곳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로 성남시가 생겼다.

잠실은 한강 물길을 바꾸고 매립해 만든 땅에 아파트 단지를 세웠다. 과천은 정부 기능을 옮겨 주거와 행정을 한 도시에 묶었다.

같은 "현대적 신도시의 출발"이라도 도시가 겪은 폭력성과 갈등의 결이 다르다. 울산에서 문제가 된 것과 성남에서 문제가 된 것은 종류가 다르다.

한강 건너에서 바라본 여의도. 고층 건물이 늘어서 있고 다리가 놓여 있다
한강에서 바라본 여의도(2020년). 1960년대 여의도는 제방을 쌓고 물길을 정리해 만든 땅 위에 업무지구와 아파트를 올린 곳이다. 사진: hiddenfree / Wikimedia Commons / CC0

문제 목록이 이때 한꺼번에 나왔다

그래서 이 시기를 "신도시 전사"로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후 수도권 신도시 정책이 반복하게 될 거의 모든 문제가 이때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토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살던 사람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 누구에게 얼마에 분양할 것인가. 교통은 언제 들어오는가. 행정구역은 어떻게 정리하는가. 공공기관을 옮길 것인가. 오르는 땅값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학교는 언제 세우는가. 생활권은 어디까지인가.

이 목록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미 한꺼번에 등장한다. 뒤 세대가 새로 발견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도시를 새로 만드는 일이 언제나 중립적인 기술사업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울산과 창원처럼 국가 산업정책을 실현하려고 만든 도시가 있었고, 영동처럼 앞으로 오를 땅값에 대한 기대가 도시 형성과 동시에 터진 곳이 있었으며, 성남처럼 서울의 빈곤을 외곽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주민 생존권이 걸린 곳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는 개발의 성공담과 행정 실패의 기록을 함께 읽어야 한다. 한쪽만 읽으면 절반이 빠진다.

네 개의 원형

이 시기가 남긴 것을 정리하면 네 가지 원형이 된다.

산업정책형 계획도시가 첫째다. 울산과 구미, 창원, 여천, 포항, 반월이 여기 속한다. 이 계보는 뒷날 산업단지와 기업도시, 혁신도시, 첨단산업 클러스터로 이어진다.

서울 확장형 신시가지가 둘째다. 여의도와 영동, 잠실이다. 목동·상계와 1기 신도시, 그리고 강남권 수요를 다른 데서 받아 내겠다는 논리가 모두 여기서 나온다.

이주정착·외곽 분산형 도시가 셋째다. 성남 광주대단지가 대표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 보상, 기반시설 지연이라는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행정기능 분산형 계획도시가 넷째다. 과천이다.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와 도청이전신도시를 이 계보에서 볼 수 있다.

네 원형은 뒤섞여 반복된다

이 넷은 따로 이어지지 않는다. 섞인다.

2기 신도시의 동탄과 고덕은 산업과 주거를 결합했다. 위례는 서울 확장과 강남권 수요 대체 논리가 강하다. 3기 신도시는 기존 도시 주민과 신규 개발지 사이의 갈등을 다시 드러낸다. 행복도시와 혁신도시, 기업도시는 1970년대 산업기지도시와 과천이 던진 문제의식을 다른 제도 형식으로 이어받는다.

국가가 강조하는 기능만 옮겨 갔다. 산업에서 주택으로, 주택에서 자족과 교통으로, 다시 균형발전과 노후도시 정비로. 질문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는 이 가운데 하나를 자세히 본다. 강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