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사는 오랫동안 만드는 이야기였다. 어디에 땅을 잡고 얼마를 지을 것인가였다. 2024년 4월 27일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질문이 하나 더 생겼다. 이미 만든 신도시를 어떻게 다시 고칠 것인가다.
이것이 신도시사의 세 번째 국면이다. 첫째는 새 도시를 계획하는 단계, 둘째는 그 도시가 생활권으로 성숙하는 단계, 셋째는 성숙한 계획도시를 다시 계획하는 단계다. 1기 신도시는 이제 성공한 과거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대규모 계획도시의 노후화를 다뤄보는 현재진행형 사례다.
왜 단지 재건축으로는 안 되나
분당과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은 아파트만 함께 늙는 곳이 아니다.
평촌 개발사를 보면 전기와 통신, 상수를 함께 수용한 공동구 4.4킬로미터, 보행자 입체횡단시설 17개소, 중심상업지 미관광장 지하주차장 891대, 하루 15만 톤 규모 하수처리장, 하루 200톤 규모 쓰레기소각시설이 도시 단위로 계획되고 설치돼 이관됐다.
분당은 규모가 더 크다. 주변도로망 51.3킬로미터와 전철 32.2킬로미터, 하루 17만 5천 톤 하수종말처리장, 하루 600톤 소각장, 공동구 14.7킬로미터가 같은 방식으로 깔렸다.
같은 시기에 지었다는 것은 같은 시기에 낡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분당의 정비는 9만 7천 세대의 주거 재건축이 아니라 광역교통 수요와 공원·학교·공공청사, 지하 공급시설, 하수와 소각 같은 환경기초시설을 새 밀도에 맞춰 다시 계산하는 일이 된다. 계획 당시의 성공 요소가 정비의 난점이 되는 구조다.
제도는 실제로 움직였다
법이 만들어진 뒤 절차는 진행됐다.
2025년 12월 정비계획이 잇따라 확정됐다. 성남시 도시계획위원회는 12월 15일 분당의 샛별마을 2,843가구와 양지마을 4,392가구, 시범단지 3,713가구, 목련마을 1,107가구 등 4개 선도지구 1만 2,055가구의 정비계획안을 조건부로 가결했다. 안양시는 12월 2일 평촌 A-17구역 1,750가구와 A-18구역 1,376가구를 의결했다. 군포시는 12월 22일 산본 통합9-2구역 1,862가구와 통합11구역 2,758가구의 심의를 마치고 24일 특별정비구역 지정까지 끝냈다.
2026년 구역지정 물량 상한도 정해졌다. 일산 2만 4,800가구, 중동 2만 2,200가구, 분당 1만 2,000가구, 평촌 7,200가구, 산본 3,400가구다.
숫자만 보면 순조롭다. 그런데 도시마다 막힌 자리가 다르다.
분당은 이주가 막혔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다.
2027년에서 2028년부터 1기 신도시 전체에서 매년 2만 가구 규모의 이주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분당만 1만 2천 가구다. 재건축은 한 단지를 비워야 시작되는데 그 사람들이 살 곳이 근처에 있어야 한다.
성남시는 이주 후보지 다섯 곳을 제안했다. 국토교통부는 그 다섯 곳 모두 2029년까지 입주가 불가능하다고 평가했고 성남시의 이주대책을 불완전하다고 판단했다. 국토교통부는 연차별로 재건축 배정물량을 조정하겠다면서 성남시에 대해서는 연차별 배정물량 이월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성남의 경우 분당 재건축뿐 아니라 구도심 정비사업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이주 수요가 많은 반면 이를 수용할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본계획을 세울 때 지자체별 이주 수요를 고려해 연차별 구역 지정 물량을 정했다는 것이다.
주민 쪽 시각은 다르다. 분당재건축연합회 최우식 회장은 민간의 영역인 만큼 이주대책을 이유로 재건축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주 부지 발굴이 쉽지 않다는 것은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군포시는 서울시 남부기술교육원 부지를 비롯해 지역 내 이주 주택 활용 부지 다섯 곳 정도를 발굴했지만 시기나 여건을 고려할 때 바로 활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산은 사업성이 막혔다
일산의 벽은 다른 쪽에 있다.
일산과 중동은 2024년 11월 선도지구로 지정된 뒤 2026년 6월까지 특별정비구역 지정이 단 한 곳도 없다. 1년 반이 넘었다.
이유로 지목되는 것이 용적률이다. 일산의 기준용적률은 300퍼센트로 1기 신도시 가운데 가장 낮다. 기준용적률이 낮으면 그만큼 공공기여 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되고 조합이 셈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2026년 6월 지방선거 국면에서는 이를 350퍼센트로 올려야 한다는 공약이 나왔다.
분당은 지을 수는 있는데 나갈 곳이 없다. 일산은 나갈 사람은 있는데 지을 셈이 서지 않는다. 같은 법 아래에서 정반대의 병목이 생겼다.
이주 수요를 어디에서 흡수할 것인가
이것이 노후계획도시 정비에서 가장 오래 남을 질문이다. 지금 나온 답은 절반짜리다.
국토교통부의 방식은 연차별 배정물량 조정이다. 한 해에 나갈 사람 수를 행정이 조절해 이주 수요 자체를 줄인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매년 2만 가구 이상 발생할 이주민을 1만 가구 이내로 줄여내는 것 외에는 뚜렷한 이주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것은 대책이라기보다 속도 조절이다. 이주할 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주하는 사람 수를 맞추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전세시장 충격은 줄지만 정비 기간은 길어진다. 30년 넘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그 기간을 더 기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친다. 3기 신도시의 새 공급과 1기 신도시의 재건축 물량이 같은 수도권 안에서 같은 시기에 나온다. 한쪽에서는 새 도시를 짓고 다른 쪽에서는 옛 도시를 비운다. 두 흐름을 수도권 전체에서 조정하지 않으면 서로의 변수가 된다.
세 번째 국면의 성격
새 도시를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땅이었다. 어디를 지구로 지정하고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였다.
다시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이다.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어떤 순서로 어디로 옮기고 얼마를 부담시킬 것인가다. 보상 협의는 끝이 있지만 이주는 돌아올 자리가 있어야 끝난다.
1기 신도시 정비를 지켜볼 때 봐야 할 것은 착공 건수가 아니다. 매년 몇 가구가 실제로 이주했고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다. 그 숫자가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이 2027년이다.
다음 편에서는 지금까지 다룬 신도시들이 지도 위 어디에, 어느 행정구역에 있는지를 정리한다.